In Korea/자전거 국토종주

국토종주 자전거여행 - 3일차

을복씨 2022. 12. 29. 17:02

국토종주 3일차

-현풍터미널 출발 > 달성보 > 강정고령보 > 칠곡보 > 구미보 > 낙단보 > 상주보 > 상주상풍교 > 문경시 도착

-약 155km

 

 새벽 6시에 일어나 사상터미널로 가서 현풍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좀 자야지 생각했는데 버스 천장에 붙어있는 환풍구가 열려있어서 그곳으로 찬 바람이 엄청나게 들어왔다. 닫으려고 했는데 경첩이 고장나서 닫히질 않았다. 그래서 잠도 못자고 2시간가량 오들오들 떨면서 왔다... 시작이 좋지 못했다. 아침에 밥도 못먹었는데... 흑 터미널 주변에서 아침을 먹고 가야해서 밥집을 검색해보니 현풍 밥 잘하는 집이 터미널 바로 옆에 있고 평도 상당히 좋아서 그곳으로 갔다. 제육볶음 정식과 계란후라이를 주문했는데, 된장찌개도 같이 나왔다. 그런데, 정말정말 맛있었다. 이번 자전거여행때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밑반찬도 푸짐하고 고기는 물론이고 찌개도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버스에서 겪은 슬픈 감정을 단숨에 녹였다.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기분좋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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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를 지났는데, 자전거도로와 도심이 꽤 거리가 있어서 그런가 도시의 전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밥도 배부르게 먹은 상황이고 시간도 없고해서 그냥 통과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왜관리가 있었다. 그곳은 내 친구가 예전에 학교때문에 자취를 했던 곳인데, 이 블로그에도 언급했었지만 수능을 치고 친구자취방에 놀러가서 재밌게 논 후에 심심하니까 부산까지 걸어가야지하고 겁도 없이 도전했다가 밤에 너무 무서워서 빤스런쳤던 바로 그곳이다. 그때는 해가 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밝은 낮에 보니 꽤 멋진 곳이었다. 그런데 정말 맞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지난 이틀간 맞바람이 불긴했어도 의식하지 않고 달렸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너무 맞바람이 심했다.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나질않고 그마저도 힘을 꽤나 써야만 했다. 그 상태로 몇시간을 달리니 정말 인내심이 바닥나버렸다. 너무 열이 받았다. 그냥 슝 가는게 아니고 무언가를 밀면서 가는듯했고 바람은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천에서 출발했으면 이 거센 바람을 타고 왔겠지.. 생각해보니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까 앞으로 3일간 이 맞바람을 견뎌야했고 그냥 인천으로 가서 내려올까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인생을 편하게만 살수는 없었다. 가끔은 이런 맞바람을 뚫고 가야만 할때도 있는 법. 게다가 인천에서 내려온다해도 만약 그때도 맞바람이 불면 다시 부산에서 출발할건가? 모든 걸 내 입맛대로 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편하게만 살 수는 없다. 그냥 버티고 버티다보면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영차영차 소리내며 밟았다. 

 

 그렇게 칠곡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보들은 생긴것들이 전부 특이했었다. 무슨 프로토스 건축물처럼 말이다. 그런데 칠곡보는 가장 정직하게 생겼더라.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보는 맛이 없었다.  그곳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도시락을 데워먹으며 오늘 어디까지 가야할지 생각했다. 내 자전거 평속은 시속 20km였고 남은거리와 시간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지름길로 가도 결국 야간라이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드시 문경시까지는 가야지만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남은 인증센터는 4개. 첫날과 둘째날에 도장을 2개씩만 찍어서 그런가 하루만에 4개는 너무 많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냥 밟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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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문제를 해결해서 그런가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사실 지난 이틀간 이 문제때문에 마음한켠이 불편했었는데 이 마음의 짐이 사라져서 한결 개운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너무 추워져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옷을 하나 사서 입어야만 했는데 가는 길에 스포츠매장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구미시의 유니클로 매장에 가서 히트텍을 사입기로 했다. 그 유니클로 매장은 자전거도로와 제법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좀 빨리 달려야만 했다. 구미시는 평범한 작은 도시였는데 lg 디스플레이 공장이 굉장히 크게 들어서있었다. 그건 멋졌다..! 그것 이외에는 별로 볼것도 없었고 도로상태도 좋지않았기 때문에 히트텍만 구매하여 입고 바로 출발했다. 확실히 안에 내복을 하나 껴입으니 말도 안되게 좋았다. 뭐 원래는 반팔이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가는 길에 바로 옆에있는 풀밭에서 뭔가가 샤샤샥 움직이길래 멈춰서 봤더니 두더지가 있었다. 내 자전거소리를 듣고 황급히 구멍으로 들어가는 게 귀여웠다. 처음보는 두더지가 너무 신기해서 그 녀석이 들어간 구멍을 나뭇가지로 찔러봤는데 정말 깊었다. 신기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그런 구멍들이 굉장히 많았다. 더 들쑤셔보고 싶었지만 괴롭히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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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밤이 되었다.  상주에 있는 보들은 정말 멋지게 생기고 가는 길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인증센터들 간의 간격도 짧아서 금방금방 도장을 찍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야간라이딩을 시작할 때쯤이 되니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런 자전거도로는 낮과 밤의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다. 게다가 카카오맵에 보이는 경사로에 우뚝 솟아있는 송곳하나... 저게 뭘까 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산길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경천대 업힐 또는 매협재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이런 경사는 살다살다 처음이었다. 애초에 산을 타야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덤블링할 정도로 살벌한 경사까지... 몹시 끔찍했다. 단언코 이번 자전거여행 최악의 경험 1위다. 어느정도였냐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경사로를 내려갈 정도였다. 경사도 살벌하고 바닥에 낙엽이 너무 많아서 미끄러질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은 정말 을씨년스러운걸 넘어서서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후레쉬로 비춰보면... 좀 무서웠다. 아바타처럼 나무와 풀이 밤에 빛나면 어떨까... 싶지만 그때는 그냥 얼른 내려가고 싶었다. 재수없이 멧돼지나 들개를 만나면 정말 큰일나기 때문이다. 이때는 정말 무서워서 그냥 호다닥 내려왔다. 진짜... 최악이다. 그 길이 끝났을때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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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기전의 풍경

 그렇게 죽음의 경사로를 넘고 또다시 한참을 달리다 엄청 멋있는 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 다음 보까지 가는 길에 조명이 있어서 신비로운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그 조명 좌우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이라 정면만 보고 달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상주상풍교에 도착했다. 이쯤되니 그 약간의 공포와 긴장을 즐기게 되었다. 아무튼 인증센터에 들러 도장을 찍으며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짐을 느끼는 그 쾌감이란... 난 이제 도장을 찍기위해 자전거를 타게되었다. 도장을 찍고 그곳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부식을 먹어 체력을 보충한 다음 마지막 인증센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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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증센터는 또한 밤에 보니 최악이었다. 자전거 도로에 어떠한 가로등도 없어서 그냥 어둠 속을 자처해서 들어가야만 했는데 선택지가 없었던 터라 악마의 소굴 악의 구렁텅이로 기꺼이 몸을 던졌다. 그래도 이제 오늘 하루 끝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가는 길에 문득 하늘을 보니 별이 정말 잘보였다. 누군가와 여행을 온것이라면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라봤을 정도로 황홀한 전경이었지만 난 혼자에 너무 춥고 무서웠던 터라 그냥 힐끔힐끔 보면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문경시에 도착했고 난 환호를 질렀다. 항상 재밌는게, 밤에 한참 달리다보면 도시가 갑작스럽게 빛을 밝히면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디 영화나 만화에서는 저 멀리서 밝은 낌새가 보이며 서서히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코너하나 돌면 갑자기 도시의 전경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전경을 볼때의 쾌감이란.. 어쩌면 살았다는 안도감일수도 있겠다. 거기서 맛있는 저녁밥을 먹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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