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Korea/자전거 국토종주

국토종주 자전거여행 - 2일차

을복씨 2022. 12. 28. 15:58

국토종주 2일차 

-하남읍출발 > 창녕함안보 > 합천창녕보 > 현풍도착

-약 110km

 

 모텔에서 7시에 기상하였으나 밍기적대서 8시쯤 나와 출발했다. 안개낀 강과 산, 그리고 아침공기를 마시니 왠지 모르게 자꾸 군대생각이 나서 상쾌하기보단 오히려 진절머리가 났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전날에 산 닭가슴살과 음료를 마셔두어서 하남에서 해결하지 않고 남지읍에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예쁜 구간도 있고 인상적인 건축물도 있어서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혼자 라이딩을 하다보면 할 말도 없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밥 시간 전에는 무엇을 먹을지 항상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래서 곧 도착하는 남지에서 무엇을 먹을지 쉬는 시간에 검색을 했는데, 소규모의 도시라 그런지 밥집도 많이 안보이고 리뷰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왠만하면 아침으로는 꼭 밥을 먹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 날에는 햄버거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햄버거집은 대체로 프랜차이즈점이기 때문에 찾기도 쉽고 맛도 똑같다. 하지만 내 최애 맥도날드가 없어서 그 다음 최애인 맘스터치로 갔다. 이 맘스터치는 평이 유난히 좋아서 믿고 들어갔는데. 그 평 값을 하는 집이었다. 깔끔하고 음식도 금방 나오고 친절하시고.. 라이딩을 하면 칼로리를 오전 오후 1000kcal씩 도합 2000kcal을 소모하기 때문에 최대한 먹을 수 있을때 많이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감자에 치즈까지 뿌려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보급을 했다. 남지읍은 옛날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작은 도시였기에 딱히 볼거리도 없어서 바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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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은 너무 만족스러웠다. 날도 좋고 경치도 좋고 배도 부르고 보급도 넉넉하고..! 열심히 밟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가다 오르막길을 마주했다. 그 오르막은 심상치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카카오맵으로 경사로를 보니 웬 송곳이 하나 있었다. 그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겨울이었으나 그 경사로를 오르니 몸에서 땀이 많이 났다. 게다가 길에 정상까지 몇미터- 이렇게 중간중간에 알려줘서 오히려 더 힘들었다. 차라리 모르는게 맘편하고 아무 생각없이 갈 수 있는데 자꾸 그 문구가 눈에 보이니 이 힘듦이 의식이 된다고 해야하나... 그걸 적은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체력을 안배해야해서 내려서 끌바를 하는데, 길에 글자같은게 적혀있어서 보니까 이전에 국토종주를 다녀갔던 사람들이 적은 글들이었다. 돌멩이로 긁어서 글을 적었던데 올라가면서 그 글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누구누구 사랑해, 누구와 함께하는 국토종주 등 기록용이 많았으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글의 빈도가 높아지고 욕이 많아졌다ㅋㅋㅋㅋ 그 글들을 보니 재밌고 심심하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포기하지마와 같은 응원하는 글들이 있었는데, 힘든 상황에서 그 글을 보니 정말 힘이 났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정상에 도착했고, 굉장히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쉼터도 있었는데, 인증센터도 같이 있었다. 분명히 인증센터는 많이 남았는데 뜬금없이 하나가 있길래 내가 실수한건가하고 알아보니, 오르막을 피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인증센터라고 한다. 이게 못오를 정도는 아닌데 몇박며칠을 달리다 이걸 만나면 엄청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회하는 사람들이 꽤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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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경치를 구경하다 어제 전화가 왔던걸 떠올려 을숙도 주차장에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내가 부산에 돌아가서 차를 빼야하는지 물어봤는데, 법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굉장히 안심스러웠다. 도중에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분이 조금만 예의를 갖췄다면 돌아갈 생각도 했겠으나 그러지 않았으니 그냥 끝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한동안 쉬며 경치를 구경하다 내리막을 즐겼다. 

 

 다시 한참을 달렸다. 풍경은 딱히 색다를게 없었다. 가도가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비닐하우스에 겨울이라 갈색으로 물든 갈대밭과 민둥산이 되려고하는 산들.. 이제 풍경을 보고 감동을 얻는 빈도가 줄어들고 도장을 찍을때 느끼는 희열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도장찍기에 열광하는 지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안창녕보에 도착했다. 여기서 일이 터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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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본능적으로 주차장에서 온것이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온 전화를 안받을 수는 없어서 전화를 받았더니 이번에는 버스기사가 아니고 주차장 관리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맞으나 내가 차를 빼지 않으면 본인이 정관에서 을숙도까지 밤에 차를 타고와서 버스가 주차할 수 있게 주차장의 뒷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제도 밤에 그 버스기사의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타고 와서 빼주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 분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내가 주차장 한 가운데에 주차를 했을까. 그냥 구석에 주차할걸.. 그 분 말로는 구석에 주차했으면 이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 버스기사를 도와줄 마음은 없으나 애꿏은 분이 피해를 보고 나에게 통 사정을 하는데 부산에 안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복귀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곳은 완전 깡촌이라 주변에 부산으로 갈 수 있는 운송수단이 없었다. 규모가 있는 도시로 가야만 했다. 그때 시간이 약 3시경이었으니 현풍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야했는데 버스시간표를 보니 6시에 출발하는게 있어서 그걸 타고 가기로 했다. 사상에 도착해서 을숙도까지 또 언제가냐,,라는 생각을 뒤로 한채 현풍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시간도 남았겠다 뭘 먹을까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혹시몰라 버스시간표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내가 확인못한 버스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부터 현풍터미널까지 전력으로 달리면 탈 수 있는 버스였다!!

밥은 부산에서 먹기로 하고 현풍터미널로 미친듯이 밟았다. 그 버스를 놓치면 약 2시간여를 기다려야했기에 그러기는 싫어서 엄청나게 밟았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나 싶을정도로 거세게 달렸다. 하지만, 정말 간발의 차이로 놓칠 위기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달렸고 마침내 현풍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버스는 막 출발하고 있었고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니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때, 근처에 있던 분이 부산으로 가냐고 물어봐주셨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분이 가는 버스를 불러세우고 나를 태워주시는게 아닌가!!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운좋게 부산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보급도 다 떨어지고 밥 시간도 되었고 버스타려고 미친듯이 밟은 바람에 그만 봉크가 와버렸다. 그건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었다. 멀쩡한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배고픔을 아득히 넘어선 무언가였다. 그때 정말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사상터미널 앞에 있는 해장국집에 곧장 달려가 특사이즈를 순식간에 비워냈다. 정말 먹어도 먹어도 걸신들린것마냥 배가 고프더라... 끔찍한 경험이었다. 진짜 일주일 굶은 사람처럼 먹었다. 그때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고 오로지 밥을 먹는데만 집중했다. 영화같은데 보면 며칠 굶으면 쥐도 잡아먹고 그러던데 그 장면이 진심으로 이해가 갔다. 그렇게 밥을 먹고 을숙도로 가서 차를 뺐다.

 

주차장 관리인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하소연을 하셨다. 그 버스기사가 관리인 아저씨께도 한바탕 하신 모양이더라. 한밤에 택시타고 문열어주러 왔는데 본인에게 막말을 하니 말싸움을 했다고... 그래도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사실 이런적이 예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처럼 온 사람도 있는데 안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법으로 전혀 문제될게 없으니 모르쇠하고 안올수도 있었는데 여행하다가 돌아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 분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나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차를 빼서 집으로 왔다.

 

 정신이 없어서 오늘은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게다가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첫날에 늦게 출발하고 오늘은 도중에 돌아오는 바람에 조금밖에 가지 못했다. 남은 기간동안 하루에 150km는 가야만 했다. 암울한 상황이다. 그 정도의 거리는 가본적이 없는데 3일동안 그렇게 가야하다니... 그래도 집에와서 기분은 좋았다. 그냥 이대로 끝낼까도 싶었는데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내일 새벽에 현풍터미널로 버스타고 가서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