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Korea/자전거 국토종주

영산강 섬진강 자전거여행 - 3일차

을복씨 2022. 11. 9. 14:02

3일차

-곡성 > 화개장터 > 광양 

-약 95km

 

전날 2시간 좀 넘게 잔 탓인지 곡성에서 너무 오랫동안 자버렸다. 9시를 넘어서 모텔에서 나와 간단히 밥을 먹고 10시에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했다. 곡성에서 섬진강 자전거길로 합류하는 구간에 예쁜 건축물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잘 꾸며놓은 곳이었다. 

귀여운 곳이다

또다시 행복한 섬진강 자전거길이 시작되었다. 가는 내내 도로때문에 불편한 적은 한번도 없었을 정도로 그 길고 긴 도로에 허점은 없었고 풍경또한 몇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을 예쁜 광경이 지속되었다. 전날에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자주 쉬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럴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몸이 가볍다고 무리하다가 나중에 저녁즈음에 업보를 되돌려받을 것 같아 50분마다 의무적으로 10분씩 쉬었다. 영산강 길에는 작은 정자와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쉼터가 많았지만, 섬진강길에는 그걸 보기가 꽤나 힘들었다. 쉴 타이밍에 운좋게 쉼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로에서 쉬거나 길에 간간히 있는 편의점에서 쉬었다. 가는 길에 카페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쉬는동안 커피를 사서 마시면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풍경은 항상 예쁜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기억이 남는 것은 다름아닌 캠핑장이다. 편의점 아래쪽에 캠핑장이 있었는데,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약간 뜬금없지만 나중에 저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날은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정도로 내비를 자주 들여다 봤다면, 섬진강에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딱 강만 따라서 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강을 따라 길이 정말 정직하게 나있었다. 그리고 섬진강길은 영산강과 다르게 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파란색으로 줄을 그어놓고 자전거길이라고 해놓은 구간이 꽤나 많았다. 그 길은 산과 강을  양옆에 끼고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밀양 얼음골처럼 덥다가 갑작스럽게 공기가 차가워지는 구간이 굉장히 많았다. 시원한게 아니라 차가웠다.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절한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도 난 추위를 잘 타지않는 체질이라 그런 에어컨같은 공기가 너무 반가웠다. 다만, 추위를 잘 탄다면 오후 2시의 쨍쨍한 햇빛 아래에서도 엄청난 차가움을 자랑하는 산공기 덕분에 추울 수 있겠다 싶더라.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구례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구례인줄 몰랐는데, 구례군 기차역이 떡하니 있는 것을 보고야 알아차렸다. 사실 2일차때 곡성에서 잘지 아니면 좀 더 가서 구례에서 잘지 고민하다가 곡성을 선택한 거라 구례가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 주변 인프라를 보니 곡성에서 자길 잘한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은 구례에서도 정말 외진 곳이긴 했지만, 도시의 중심부도 자전거 도로에서 봤을때는 너무 멀어보였다. 이래나 저래나 곡성에서 잔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만 구례군 기차역은 옛날 풍으로 건축해서 그런지 젊은이들이 정말 좋아할만 했다. 물론 나도 젊은이라 정말 좋았다. 사진도 찍고싶었으나 자전거를 타는 그 흐름을 끊기가 싫어서 그냥 계속 달렸다.

 

가는 길에 본 감농장

전날에는 담양이라는 큰 도시가 있어서 점심 걱정을 안했지만, 이번에는 꽤나 신중해야만 했다. 가는길에 규모있는 도시가 없었기 때문인데, 다행히 식당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인기있는 음식점들은 그런데 죄다 재첩이나 게, 민물에서 사는 고동을 주로 파는 곳이었어서 난감했다. 난 그런걸 못먹기 때문이다. 다행히 평이 제법 좋은 경양식 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밥을 먹는 걸로 정했다. 그리고 운좋게도 그 밥집 바로 옆에 밤빵으로 인기있는 카페도 있었기에 계획을 수월하게 짰다. 그렇게 그 마을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화개장터가 도로 표지판에 자꾸 적혀있는게 아닌가. 난 사실 화개장터는 특정한 날에 열리는 장터는 화개장터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워낙에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부산에서도 화개장터가 열리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섬진강 옆에 있는 장터의 이름이 화개장터였다니 꽤나 충격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몰랐다니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도로만 주구장창 달리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든 장터가 나오니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장터에서 파는 것을 보니 사실 부산의 시장통과 별로 다를바가 없었다. 그렇게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한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은 한식뷔페였는데, 살짝 외진 곳에 뜬금없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 좋게 발견했다. 게다가 집밥을 먹고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냥 그곳에서 먹었다. 다행히도 내 맘에 쏙 드는 반찬들이 한 가득이었기 때문에 정말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다. 꽤나 큰 뷔페 접시에 정말 가득담았는데, 다 담고나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내가 이걸 다 먹을수는 있나? 싶었는데 보기좋게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한 그릇 더 받아서 먹었다. 최고였다. 다만 리뷰에는 살얼음이 떠있는 식혜를 먹었다고 누군가가 적었던데 내가 갔을때는 식혜가 아니라 수정과였다. 그 부분은 살짝 아쉬웠다.

 

나이를 먹어도 잼민이 입맛이다

그렇게 밥을 맛있게 먹고 유독 평이 좋은 카페가 있길래 그곳에 갔다. 커피는 사실 다른 곳과 차별점을 느끼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파는 밤빵은 정말 맛있었다. 계산대에 동경대 제과제빵학과 졸업장이 있었는데. 한국의 졸업장과는 너무~ 달랐다. 옛날 졸업장처럼 일본어 손글자로 적혀있었는데, 뭐라 적혀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1900년대 졸업장 같았다. 제사상에 올리는, 글자를 적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밤빵은 구매하자마자 먹지는 못했다. 너무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에 저녁을 먹고난 후 디저트로 차갑게 식어버린 빵을 먹었음에도 꽤나 맛있었던 걸 보면 갓 만든 건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하다. 

 

장터에는 손님들 먹어보라고 샘플로 그릇위에 간식 몇조각 올려놓은 가게가 많았다. 점심먹기 전에 둘러보았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이것저것 집어먹었는데, 별 생각없이 집어먹은 간식 하나가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 이름은 오란다였는데 정말 쫄깃하고 겉은 바삭하고 딱 적당하게 달고 고소한 내음도 그대로 살린,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과자였다. 길 가면서 별 생각없이 집어먹고 가던 길 가는데 너무 맛있어서 다시 되돌아온 집이다. 위에서 언급한 밤빵과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난 오란다,,! 그럼에도 밤빵을 택한 이유는 오란다는 부피가 너무 커서 내 가방에 안들어갔기 때문이다ㅠㅠ 정말 슬펐다. 진짜 정말로 맛있었다. 왠만한 프랜차이즈 과자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 그 오란다때문에 부산에 사는 내가 화개장터를 다시 가야지라고 생각할 정도다. 아저씨 두분에서 운영하던 가게였는데, 한분이 다른 한분께 이걸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서 맛이 없어지는데 왜 이렇게 했냐고 구박을 주는 모습까지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보고 진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상호명은 기억이 안나지만 가게 위치는 기억이 난다. 가장 큰 장터의 거의 중심부에 있는 오란다 가게였다. 다음에 가면 무조건 산다.

 

그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가는 길도 변함없이 페달은 가볍고 공기는 차갑고 풍경은 아름다웠다. 별로 언급할게 없을 정도로...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힘들었던 2일차가 기억에 제일 많이 남고 행복했던 3일차는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렇게 감탄했던 풍경들이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던 깨진도로들, 턱이 말도 안되게 높았던 교랑 놈들은 기억이 선명하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더 각인이 잘 되나보다. 그렇게 별 일없이 섬진강의 끝인 광양에 가까워졌다. 가는 길에 화장실이 가고싶었지만, 화장실 사이의 거리가 꽤나 길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화장실에는 모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과장 좀 보태어 전기파리채로 한번만 휘두르면 수십~수백마리는 잡힐 정도로. 그래서 도저히 이용을 못하겠더라. 자전거도로 중간중간에 화장실은 설치가 잘 되어있었지만, 내부는 관리가 잘 안되는 듯해서 그건 좀 아쉬웠다. 이번엔 운이 좋았는지 가는 도중에 배가 아팠던 적은 없었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유인인증센터 옆의 강

드디어 광양에 도착했다. 첫날에 나주에 입성했을때는 드디어 야간라이딩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배를 채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번엔 그 정도의 감흥이 없었다. 아.. 이번 자전거 여행이 끝났네 정도? 광양도 해봐야 곡성이나 나주쯤 되겠지 싶었는데 비교가 안되게 큰 도시였다. 가면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보이는데, 포항 못지않게 크고 밤인데도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굉장히 큰 트럭들이 많이 다니기에 조심해서 다녀야했다. 그렇게 섬진강의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니 유인인증센터가 있었다. 그곳에 문닫기 바로 전에 도착하여 인증수첩을 구매하고 주변을 좀 둘러본 후 마지막 모텔로 향했다. 사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으면 바로 가려고 했는데 버스가 이미 없었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밥은 모텔 바로 앞에 있던 족발을 시켜먹었다. 때마침 디즈니플러스에서 범죄도시2가 풀렸길래 그걸 보면서 밥을 먹었다. 마지막날은 좀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집에 가서 잘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쉬웠다. 돈도 좀 아까웠고.. 부산 경남의 족발과 전남의 족발은 맛은 비슷했다만 양념장이 너무 달라서 먹는동안 감질맛이 났다. 족발에 초장을 주다니...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도 광양 시내에 있는게 아니라 자전거로 한시간 정도 타야하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고생좀 했다. 시간이 애매해서 놓칠까봐 아침부터 엄청 밟았다...! 다행히 버스출발 5분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아름다운 광양

이렇게 영산강 섬진강 자전거 여행이 끝이 났다. 다행히 준비물을 잘 챙겨가서 크게 난감한 상황은 오지 않았다. 이것도 챙겨야하나..? 싶은 물건까지 전부 사용했으므로 역시 이런 몇박 며칠동안의 여행에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게 맞는 것 같다. 특히나 제일 긴가민가했던 펑크수리세트... 이거 안챙겼으면 그 야밤에 끌바하면서 몇시간을 걸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필수품인데도 첫 자전거여행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챙겨가는 걸로. 

난 풍경감상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부산에 살면서 매주 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다. 그렇게 많이 본건데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볼때마다 설렌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자전거여행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주변에서 눈을 못떼겠더라.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앞만 보며 질주하는 분들을 보면 신기했다. 물론 그들도 날 보며 신기해하겠지. 다만 가장 아름답다는 섬진강을 첫 여행으로 쓰다니 그건 좀 아쉬웠다. 다른 자전거길을 경험한 다음에 섬진강을 갔더라면 그 가치를 더 잘 알았을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다른 자전거길을 가도 그만큼의 만족을 기대하기는 힘들것이다. 제주도 정도라면 또 모르겠다. 그곳은 바다를 끼고 달리니까. 그렇다고 안갈건 아니다. 인증수첩을 채워나가야지ㅎㅎ

후기가 너무 길었다. 결론은 재밌었다. 엄청난 세금을 들여 만든곳인데 한번쯤은 가봐야하지 않겠나? 다음은 제주도나 부산-인천이다. 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