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교대에 오기까지

을복씨 2022. 9. 27. 15:04

지금은 교대에 재학중이지만 사실 난 조종사가 되고 싶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늘이 좋아서.. 구름보는게 좋아서 조종사라는 꿈을 가진후 한번도 바뀐적이 없다.

 

처음엔 항공준사관을 준비했다. 고졸에 군필이면 지원할 수 있어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알바로 돈을 벌며 준비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6시까지 회사에서 알바를 하고, 일이 끝나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도서관으로 가서 토익과 항공무선통신사 자격증 공부를 했다. 도서관이 마칠때까지 공부를 하고 헬스장으로 가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집에 갔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라 사회에서 보내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고, 대학교에서 착실하게 학년을 채우고 스펙을 쌓는 친구들을 보며 뒤쳐지지 않게 노력했다. 

 

지원을 위한 최소조건을 만족시킨후 본격적으로 준사관 시험을 공부하려는데, 때마침 재수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꿈에 그리던 교대에 입학하게 된 친구가 군대에서 헬기를 조종하는 것보다 차라리 재수를 해서 항공대를 가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사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민항사 조종사였다. 의무복무 기간동안 돈을 착실히 모아 app나 미국에서 비행 교육을 받고 조종사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이런 목표를 세운 이유는 항공대에 입학해 돈을 쓰면서 준비하는 것보다 돈을 벌면서 준비하는게 더 낫겠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항공대에 입학할 수 있는 높은 성적을 받을 자신도 없었다.  학창시절에 수학은 9등급도 받아봤을 정도로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른 과목들이 받쳐줘서 지방 국립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항공대에 안정적으로 들어가려면 거의 1등급을 목표로 공부해야만 했다.

재수를 성공적으로 끝낸 친구의 손가락은 너무 펜을 오랫동안 쥐고 있었던 나머지 휘어있었다. 그것을 보고 난 절대 공부는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날 계속 설득했다. 어차피 최종 목적지가 민항사 입사라면 그냥 수능공부를 해서 조종사가 되는게 낫지 않겠냐고. 맞는 말이다. 의무복무가 끝나면 내 삶은 내 마음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몰랐다. 수능공부가 두려워 길을 돌아가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가끔 들긴했다. 

그래서 유튜브로 공부영상과 자극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로 정승제 선생님과 이지영 선생님의 영상을 봤는데, 그 분들의 말씀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기다, 오랫동안 도서관을 다니며 바쁘게 살았던 경험이 자신감을 만들어주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서서히 바뀌던 중, 꿈을 꾸었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입학을 하는 꿈이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정말 순수한 행복을 오랫동안 만끽했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감정은 생생했고 그날 재수를 결심했다.

 

회사를 정확히 12월 31일에 그만두고 1월 2일부터 모은 돈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1월1일은 도서관이 문을 안열기 때문이었다. 8시에 입장하고 도서관이 끝나는 시간까지 공부를 했다. 헬스는 그만두었다. 재수에 실패했을때 운동을 핑계대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져 도서관이 문을 닫아 집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재수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에 열심히 했고, 성적은 확실히 오르기 시작하여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이 2등급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승승장구 하던 찰나에 일이 터진다. 한달 정기권을 갱신하는 것을 깜빡하여 더 이상 정기권을 구매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매일 비효율적인 일일권을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모았던 돈도 다 떨어져 부모님의 손을 빌려야했기에 그리고 공부습관이 잘 길러졌다고 판단되어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건 크나큰 실수였다. 독하게 각오를 해도 집에선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고 생활패턴마저 무너져 슬럼프가 찾아왔다. 거의 두 달간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했고 그렇게 9월 모의고사를 망치고 말았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정기권 구매에 성공하여 (구매인원이 한정되어 있었다.) 다시 독서실에서 공부에 매진했지만, 마라톤에서 리듬을 놓치면 끝이듯 나 또한 정말 힘들게 공부를 했다.

 

결국 항공대에 갈 성적을 맞추지 못했다. 시험을 치고 버스에서 느꼈던 감정은 허무였다.  나의 마음이, 내면이 다 타버린 재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가채점을 한 나는 결국 펜을 집어던져버렸다. 당장의 실패보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나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형 과탐을 쳤던 탓에 갈 곳도 마땅히 없었고 운항학과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기에 성적에 맞춰 지금의 교대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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